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2016.02.10에 씀)


왜 늘 저녁상을 차리는 건 나와 엄마의 몫일까?


  깨달음은 어느 토요일 저녁 느닷없이 찾아왔다. 새된 목소리로 함께 저녁 준비를 하라는 엄마의 채근에 문득 '왜 늘 저녁상을 차리는 건 나와 엄마의 몫이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와 오빠와 남동생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왜 여자들만 하는 거지? 이 의문을 제기하자 돌아오는 건 '그래서 엄마 혼자서 하라고?' 한껏 성난 엄마의 대답이었다.  내가 원한 건 소파에 누워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 오빠와 남동생에게도 공평하게 시키라는 거였는데. 생각해보니 시험공부와 같이 중대한 사안으로 내가 정말 바쁘지 않는 이상 식사 준비는 나와 엄마가 했다. 그마저도 내가 없으면 엄마 혼자서. '말 잘 듣는 애가 편한 거야, 여자 맘을 여자가 이해해줘야지.'라고 성숙한 딸처럼 굴기에는 내 성정은 거칠었고 오빠가 훨씬 더 요리에 능했으며 남동생은 남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결국 그날 나와 엄마는 한바탕해야 했다. 정작 근본적인 원인들은 앞에서 말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 외에도 나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러 의문들을 맞닥뜨린다. 엄마의 부재 시 왜 집안 남자들의 식사를 내가 차려야 하며, 어째서 나 개인의 부주의에 의한 실수가 '이래서 여자들이 군대를 가야 돼'로 귀결되는지, 사회적인 성공을 갈망하는 나에게 '그래 요새는 일을 해야 결혼도 잘한다'라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들에게 정색해야 할지 그저 웃어넘어가야 할지, 나는 종종 고민한다. 그러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문득 겁이 나기도 한다. 내가 너무 기가 센 걸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걸까. 결혼은 피할 수 없는 굴레인 건가. 아무리 당찬 나라지만, 가부장적인 집안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눅 든다.



 

 



트위터에서 가장 핫한, 페미니스트 입문자를 위한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최근 트위터에서 자주 트윗 되길래 호기심이 생긴 책이다. 9800원에 꽤 얇아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데, 아직 도서관에 입고가 되지 않았길래 그냥 샀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가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미국과 고향을 오가며 활동하는 소설가이다. 몇 년 전 TED에서 한 페미니즘 강연이 화제가 되어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냈다. 한국의 특수적인 페미니즘 문제 상황에 대답하기에는 다소 포괄적이지만 페미니스트에 대한 개념 다지기라고 생각하면 만족스럽다. 친숙한 문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술술 읽히는 것도 강점. 내가 느낀 문제들은 저 먼 나이지리아 여자도 느꼈다니. 이게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사회구조의 문제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위안을 받았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화가 나 있고 예민한 여성. 혹은 마치 남성 인권을 조선시대 여자 인권으로 낮추려 드는 불온한 세력, 기센 여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인식은 이보다 낫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페미니스트를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유쾌하게 정의한다. 사실 내가 원한 건 크지 않다. 집안일이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나 개인의 실수가 여성 전체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나 또한 인간으로서 자아실현을 목표로 삼는 존재임을 인정받고, 여자가 당연히 결혼을 인생의 과제로 삼을 것이라는 무례한 발언을 듣지 않길 바랄 뿐이다.  또한 후에 사회에 나갔을 때, 결혼과 출산이 가능하단 이유로 기회를 박탈 당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길 원하는 것. 그게 여성우월주의는 아니지 않는가?


  어쩌면 남성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여성들이 뺏어간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지향하며 남성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 중 하나가 '더치페이' 문제다.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남성들은 그동안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두려움과 나약함, 취약함을 숨기라고 요구받았다. 누가 데이트 비용을 낼 것인가도 자연스레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과 경제력의 증명을 위해서 남성들의 몫이었다. 사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부담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은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남자였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인 수단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양성평등이 실현된 사회라면, 모든 성별이 균등하게 기회를 얻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면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낼 것이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경제적 부담과 책임을 여성과 나누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밝히는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길.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보다 양성평등에 한 발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덧글

  • ㅇㅇ 2016/08/02 11:56 # 삭제 답글

    래디컬한 페미니스트들이 이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각종 여성/진보단체들이 이미 그들이 자신들의 동료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명시적/묵시적으로 인정한 이상.

    한국사회에서 본문과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공간이 여전히 남아있을지는 의문입니다.
  • 천공의채찍 2016/08/02 11:57 # 답글

    저 책에서 정의하는 페미니즘과 대한민국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많이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의 페미니즘은 겉으로만 양성평등을 표방하는 여성우월주의입니다.
    많은사람들이 긴가민가 했는데 최근 사태로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속마음이 만천하에 다 드러났죠.

    남자들도 저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도의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저 책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지금같은 난리가 나지 않았겠지요.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화가 나 있고 예민한 여성.
    혹은 마치 남성 인권을 조선시대 여자 인권으로 낮추려 드는 불온한 세력, 기센 여자
    <-
    남성들이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묘사하려는 의도이셨던 것 같은데
    오히려 현재 준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페미나치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나타낸 표현입니다.
  • 낙서 2016/08/02 11:59 # 답글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여성들이 뺏어간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남성들이 묵묵히 희생하고 감내하던 의무 역시 같이 나눠 짊어져야 한다는게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일 테니까요.
  • 별일 없는 2016/08/02 12:10 # 답글

    급진적인애들때문에 이런 중도성향은 묻힐께 뻔함.
    김성주씨가 문제되는부분도 있지만 일부 맞는것도 극딜당하는 시점에선 노답ㅋㅋㅋㅋ
  • ㅇㅇ 2016/08/02 12:11 # 삭제 답글

    성별에 의해 성 역활을 강요받지 않고, 시민과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성주의자라고 자신을 지칭하기보단 성평등주의자라고 지칭하는게 오해의 여지가 없을것 같습니다.
  • 2016/08/02 12: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퍽인곪아 2016/08/02 12:31 # 답글

    "어쩌면 남성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여성들이 뺏어간다고 느낄 수도 있다. "
    아니요. 문제가 있는 소수의 남성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대시대의 남성들은 남성만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이 생겨서 가사일의 대부분을 젊은 시대의 부부들은 서로 분담하고 있습니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만약 남성의 입장에서 기존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여성들이 뺏어간다고 느낄만한 예시를 부탁드립니다. 예로 남성들이 여성들이 뺏어간다고 느끼게 되는 정책이 부산 지하철처럼 여성 전용 좌석이라던지 여성전용칸을 만든다는거죠. 그건 남성의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뺏은거기 때문이죠.
  • 비로그인 2016/08/02 12:58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직관적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하죠.
    그나저나 저자분 이름이 참......
  • mm 2016/08/02 13:16 # 답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2016/08/02 13: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듀란달 2016/08/02 13:49 # 답글

    요약하신 내용대로라면 남성들 또한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현실은...

    메갈은 페미니즘에 관심없는 폭력배들이니 그렇다 쳐도, 메갈에 옹호하는 기존 페미니스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반인 남자들에게 외면당한 운동이 과연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건지 원.
  • ㅇㅇ 2016/08/02 15:00 # 삭제

    서프러제트도 사회의 반인 남자들에게 외면당한 엄청나게 과격한 여성운동이었죠.
    불지르고 유리창깨고 회의난입하고 지금 메갈같은 건 코웃음 칠 정도의(...)

    그런데 서프러제트가 과격하다고 페미니즘에 입각한 운동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페미니즘도 과격파 온건파 다양하죠.

    개인적으로 메갈의 과격성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들이 페미니즘이 아닌 건 아니라고 봅니다.
    과격한 페미니즘일 뿐이죠.

    메갈이 페미니즘이 아니다 라거나, 페미니즘이란게 저런 메갈을 말하는거냐? 는 말들은 근본부터 틀리다고 봅니다.
    메갈은 페미니즘의 한 갈래일 뿐이니까요.

    메갈같은 과격파 페미니즘은 싫다거나, 페미니즘이란게 메갈도 포함한다 라는 편이 맞겠죠.
  • KittyHawk 2016/08/02 15:01 # 답글

    주류 페미니즘을 대변한다는 자들이 메갈/워마드 옹호로 본심을 드러낸 이상 한국 페미니즘은 페미나치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봐야 합니다.
  • UnPerfect 2016/08/02 16:50 # 답글

    본문에 메갈 언급은 하나도 없었는데 댓글은 다 메갈이 어쩌느니 한국은 안 된다느니 얘기만 있네...
  • rumic71 2016/08/02 22:13 # 답글

    '평등하다고 믿는' 게 아니라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겠지요.
댓글 입력 영역